어느덧 따스한 봄이 지나 푸르른 녹음이 우거지는 계절이 다가왔다. 푸르름이 짙어지는 이 시기에 걸맞은 마음가짐을 가지기 위해 필자가 공직에 입문하여 가장 많이 들었던 ‘청렴(淸廉)’에 대해 생각해보려 한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청렴을 중요한 공직자의 덕목이라 여겼다. 조선시대에 청렴하고 깨끗한 관리에게 청백리(淸白吏)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내린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현재까지도 청백리 정신을 잇고자 투철한 봉사정신과 청렴 등의 덕목을 갖춘 공직자에게 청백리상을 표창하고 있는 것을 보면, 청백리를 공직자의 좋은 귀감으로 여기는 것 같다. 필자는 조선의 여러 청백리들 중, 일곱 차례나 청백리로 선발된 송흠 선생의 일화를 통해 청렴의식을 일깨울 수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고을의 수령이 부임할 때면 고을에서 수령에게 말 일곱 마리를 바치는 것이 관례였으나, 송흠은 자신과 아내 그리고 어머니가 탈 세 마리의 말만 타고 간소하게 행차하여 삼마태수(三馬太守)라 불렸다. 또한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지방직만 요청하여 10여 고을의 목민관을 지내며 근무한 곳 마다 청렴하다하여 청백리로 녹선되었다.

송흠의 호인 지지당(知止堂)에서는 청렴을 실천하려는 의지가 돋보인다. ‘지지(知止)’는 멈추는 것을 안다는 의미의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말이다. ‘만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않고(知足不辱),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아(知止不殆),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다(可以長久).’라는 도덕경 구절과 같이, 절제와 신독만이 청렴과 검소로 가는 길임을 몸소 실천하며 목민관으로서 근무한 51년의 세월동안 본인의 호처럼 온갖 욕망들을 자제하며 살았던 송흠의 정신은 가히 본받을 만하다.

누구나 그렇듯 작은 소신일지라도 그것을 오래도록 ‘지키는’ 일은 어려울 것이다. 공직에 몸담은 오랜 세월동안 소신을 지킨 송흠의 태도를 지향하고 싶다. 공직문화 발전은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사명감을 갖고, 무엇을 행하기 전, 내가 행한 행동 하나가 지역사회, 더 나아가 공직사회 전체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경계하는 자기검열의 자세를 갖춰 오랫동안 녹음과 같이 푸른 청렴을 실천할 수 있길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