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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7일부터 5월31일까지 예술공간 이아에서 이명복 개인전이 열린다.

이영복 작가는 그동안 제주에서 여러차례 전시를 통해 단편적으로 작품을 선보여 왔다.

이 작가는 "이번 개인전에서는 비록 졸작이지만 80년대 초반 작품부터 근작까지의 작품 60여점을 모아 전시한다"며 "물론 저의 대표적인 몇몇 작품들은 이번 기회에 함께 할 수 없지만 이 전시회만으로도 저의 작품세계를 주제별, 시대별로 구분해 볼 수 있는 전시가 되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5월17일부터 시작하지만 개막식은 5월19일 토요일 오후 3시에 갖는다.

<예술공간 이아 기획전>

1. 전시명 : 이명복 - 그날 이후 전

2. 전시일정 : 2018.5.17.~5.31

3. 전시장소 : 예술공간 이아 전관(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중앙로 14길 21 예술공간 이아)

문의 :  T.064-800-9333, 010-9292-1108
색채로 소통하는 이야기꾼

고 영 자(미학/예술평론)

옛말에 “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우리는 이야기(서사)가 재원(財源)이자 문화인 시대를 살고 있다. 미래학자 롤프 옌센은 우리가 지향해야할 미래 사회를 ‘드림소사이어티’로 제시하며,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드림소사이어티의 주역이다”고 까지 주장한다. 동서고금 사람들이 얼마나 이야기를 좋아하고 퍼 날랐으면 인간을 두고 ‘호모 나란스(Homo Narrans, 이야기하는 동물)라는 특성까지 부여했을까.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매우 다층적 의미의 관계망이다. 거기에는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이야기 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람,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나아가 효과적 전달을 위해 이야기 매체를 만드는 사람들이 혼재한다. 이들은 이야기의 생산과 소비 및 전파를 각각 담당하며 협력·공생하는 시대의 주역들이다. 그러므로 문화의 시대, 이야기는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이야기≠이야기), 오히려 공동체의 시대정신과 정서를 반영한 문화 그 자체(이야기=문화)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회화예술 또한 간과할 수 없다. 회화 역시 이야기 매체로써 가장 오래되고, 격변기마다 위협을 받고(새로운 화파, 사진, 영상기술 등장), 그러면서도 회화 고유의 잠재성을 다원적으로 실험하며 공동체 문화의 창조, 전파, 변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기 때문이다.

화가는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시각적인 조형언어(점, 선, 면, 형, 색)로 번역하여 전파하는 무언(無言)의 이야기꾼이다. 물론 모든 회화예술과 화가들이 다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 만나는 이명복은 그런 이야기꾼임에 틀림없다. 자기중심적이라기보다는 공동체적인 이슈에 개입하여 보다 나은 공동체적인 것을 지향한다. 아무리 어둡고 처절한 주제일지라도 그의 화폭엔 관객의 시선을 끌고 몰입하게 하는 공동체 문화의 정서와 정의가 살아있다.

이번 전시는 이명복이 그림을 발표하기 시작한 1981년 이래 지금까지 야심차게 그려온 작품들을 한데 모아 펼치는 기회다. ‘권력’, ‘인물’, ‘풍경’ 연작을 비롯하여 최근 ‘제주4·3’ 연작을 포함 총 60여점으로 구성되었다. 작품 주제에 따라 그리고 시대정서에 따라 새롭고 특별한 형식(색감, 크기, 구도, 배치)을 고안·도입하고자 고심한 흔적들이 작품 전반에 엿보인다.

○ 제주도 정착

이명복은 2010년 제주 정착 이래 올해로 9년차다. 제주도 입도 직전 2~3년간 화가로서 이명복은 깊은 혼란기·침체기에 있었다 한다. 이 시기 한국사회는 사회대로 낙담, 불신, 증오, 천박한 욕망들이 뒤엉켜 언제나처럼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도 한몫했던 시절, 혼잡한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물설고 낯선 땅 제주도 서쪽마을에 둥지를 틀었다.

제주에 살기로 한 이상, 이명복에게 제주도는 더 이상 관광지가 아니라 적응하고 극복해야 할 생활현장이 되었다. 그렇게 현실을 정면으로 받아들인 덕분인지, 제주의 깊은 산골 또는 작은 해안 마을 풍경들,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이 땅에 서려있는 비극적 사건들, 그리고 그러한 비극을 기억하는 섬 땅 구석구석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란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는 작업실 앞마당 정원을 가꾸면서 제주의 흙, 돌, 나무를 만지고, 그 정원에서 풀을 뜯는 말(馬)과 대화하고, 때때로 뜻 맞는 제주 화가들과 친분을 나누며 제주 곳곳을 탐방하고, 그곳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작업 노트에 받아 적는 등의 일상을 보냈다. 그 과정 속에서 그는 마침내 지난 날 혼란기·침체기를 접고 제주 화가로서 재기와 도약의 기반을 다지게 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무엇을 어떻게 그려야할 것인가?”는 이명복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화두다. 다만 제주 정착 이래, 대상 세계를 표면적으로 형상화하는 테크닉(기술) 보다는 그 세계에 다가가는 화가 본인의 진정성 문제를 더 심각하게 고민한다고 한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 일부는 제주 공동체 영역 속에 본인 스스로의 자리를 찾아가면서 얻은 결실이다. 새로운 소통을 위해서는 기존에 고수했던 이야기 기법도 수정하고, 일부 주제는 깊이를 더한 정교화 작업(색과 형의 유기적 짜임)을 거치기도 했다. 평면 위에 자신감 있는 색채와 구성만으로도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이유다.

○ 작품 세계

우선, 이명복의 ‘권력’ 연작은 1980년대와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중반에 주로 작업한 것들이다. 이미지의 과장, 생략, 비유, 추상 등을 통해 당대 권력의 야만성과 폭력성을 조롱하고 있다. 권력을 풍자하는 작품들은 주로 원근법(소실점) 구도를 깨는 것이 특징이다. 원근법 구도 자체가 막강한 중심 권력 지향적인 효과를 발산시키기 때문이다.

반면에 작품<위대한 오만>(fig.1)과 같은 경우는 오히려 원근법을 이용하여 중심 권력을 강조하며 종국에는 그것의 기형성을 폭로하고 있다. 여기서 기형적으로 보이는 효과는 나아가 공상적인 느낌도 든다. 이런 공상적 느낌이야말로 역설적이게도 우리를 훨씬 더 감동시키기도 하는데 사실들을 반향하기 때문이다. 비평가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반세기도 전에 말한 ‘그림다운 사건(pictorial incident)’이란 바로 이런 그림을 두고 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이명복의 ‘인물’ 연작은 1990년대 및 2010년 제주 정착 이후 이어지고 있다. 앞서 ‘권력’ 연작과 대조적으로 ‘인물’ 연작은 신중하고 치밀한 극사실주의 기법을 도입하고 있다. 1990년대에는 광산 노동자·뱃사공·철거민·농민들이, 2010년 제주 정착 이래로는 제주 해녀를 비롯한 밭일하는 제주 여성들이 그 주인공들이다. 그들은 삶과 노동의 현장에서 이명복이 직접 만난 사람들이다.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 담배 한 개피로 소박하지만 행복한 휴식을 취하고 있거나(fig.2), 고개를 숙여 묵묵히 일을 하고 있다(fig.3). 그들은 무자비하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는 익명의 대중이지만, 찰나의 몸동작이 포착되어 화폭에 옮겨지는 순간부터는 특별한 존재가 된다. 고된 노동 속에서도 푸근하고 편안한 표정, 도시문화에 오염되지 않은 농촌 아낙의 몸동작, 흙내음을 머금은 농촌의 공기가 화폭을 점령한다. 찰나를 실감나게 감동적으로 극대화하는 것은 화가의 몫이다. 현실의 단순한 시각적 모방을 넘어선 경지다. 여기서는 화가의 독창적인 안목과 진정성이 관건이다. 이명복의 ‘인물’ 연작은 그 자체로 울림이 있는 서민들의 위대한 이야기다.

이명복 작업의 또 다른 굵직한 축으로 ‘제주풍경·제주4·3’ 연작을 들 수 있다. 그에게 ‘제주풍경’과 ‘제주4·3’ 연작은 맞물린 주제다. ‘제주풍경’에 등장하는 자연(바다, 산, 숲, 길, 마을, 나무, 풀, 꽃……)은 ‘제주4·3’이라는 아픈 역사를 소환하는 모티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명복의 ‘제주풍경’은 재현과 환영이 교차하고 빛과 어둠이 공존한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모티브로 삼으면서도, 다양하고 깊이 있는 색감의 변주를 통해 보이지 않은 정서(의식과 기분)를 시각화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도의 작품은 자연과 화가의 의식 양자 모두를 활용하도록 자극한다.

가령, 작품 <정원>(fig.4)은 팽나무(폭낭)을 그린 것이다. 제주도 어떤 마을을 가도 볼 수 있는 나무다. 바람 많은 제주에서 바람의 방향대로 거칠게 뻗으며 살아서 마을을 지켜왔다. 이명복은 팽나무 가지 위에 두 마리의 말(馬)과 사람을 그려놓고 이를 ‘정원’이라 이름하였다. 발상의 전환이다. 자연과 인간이 한 공간을 공유하는 한 가족이란 메시지일까. 팽나무가 의인화되고 감정이입 되는 순간이다. 그렇게 되면 팽나무야말로 인간들보다 더 오랜 세월 이 땅의 비극과 처절한 아픔을 기억하는 증언자란 것도 입증된다.

제주의 곶자왈-숲을 무대로 한 작품들도 주목할 만하다. 이명복에게 제주의 숲은 ‘제주4·3’ 당시 피신한 사람들의 상처와 아픔을 오롯이 기억하는 천연 요새다. 강렬하고 찬란한 청색조의 겨울 숲을 보라(fig.5). “찬란한 슬픔의 봄”이라는 반어법처럼, 상처와 아픔이 서린 숲이기에 이명복에게 제주의 숲은 그렇게 찬란하게라도 그릴 수밖에 없었으리라.

마지막으로 ‘제주4·3’을 정면으로 다른 작품 <광란의 기억>(fig.6)이다. ‘제주4·3’ 70주년을 맞는 2018년에 탄생한 최신작이다. 이 작품은 현재 제주4.3 평화기념관에서 전시 중(3월26일~6월25일)이라, 아쉽게도 이번 ‘예술공간 이아’ 전시에는 빠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복이 풀어내는 ‘제주4·3’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작품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은 구도의 치밀한 전략 속에 얇은 붓질로 등장인물의 사실성을 강조한 대작이다. 작품의 무대는 천정이 뻥 뚫린 동굴 안 한라산 산정을 둘러싼 사방이다. 당시 진압군에게 포위되어 고립된 제주도 이미지다. 동굴 가장자리에는 두 인물이 조그맣게 그려져 있는데 좌측 높은 곳에 서 있는 어린 꼬마가 이 작품의 주인공이다. 이 꼬마는 당시 4·3의 처절한 현장을 목격하고, 이후 광란의 기억을 겪는 주체로서, 이명복이 설정한 인물이다. 어쩌면 그 자신이다.

그는 꼬마의 시선으로 실재 역사적 인물(진압군, 연루자, 희생자 유골, 생존자, 관찰자)과 장소(동굴, 한라산, 학살터)를 한 화면에 동시다발적으로 등장시켜 시·공을 초월한 시각적 연결을 꾀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내용의 ‘실재성’과 구도의 ‘가상성’이 놀라운 조화를 이루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화면에 빨려들게 하는 마력이 있다. 4·3을 주제로 한 ‘역사적 상상화’ 또는 ‘상상적 역사화’라 불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 같다.

이명복은 작품 <광란의 기억>을 통해 제주에서 자신이 짊어질 사명에 대해 중대한 계시를 받은 듯하다. 화가로서 앞으로 제주에서 할 일을 찾은 것 같다는 회고에서도 이를 느낄 수 있다. 시들지 않는 열정과 동시대적인 감각을 지니며, 보다 나은 공동체적인 것을 지향하는 이야기꾼 이명복에게 거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삶 106x70cm 2016
이번 전시는 제주문화예술재단 예술공간 이아의 기획전으로 이명복 작가가 소장하고 있는 80년대 초기 작품부터 제주 이주 후에 제작된 최근 작품까지 약 65점이 전시된다.

이명복은 1982년 결성된 민중미술 단체 '임술년'의 구성원으로 활동했으며 그는 당대 사회의 어두운 이면과 정치적 현안들을 극사실주의적인 화법을 통해 표현했다. 현재도 우리사회의 모순과 한국 근· 현대사를 주제로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이전 전시 작품구성은 80년대 작품을 시작으로 제주에서 제작한 작품까지 4부로 구성해 보여준다.

1부 : 1981년~1989년 - 우리에게 미국은 누구인가

2부 : 1990년~1999년 – 증언하는 산하

3부 : 2000년~2009년 – 위장된 야만

4부 : 2010년~현재 – 제주에서 사회적 풍경을 찾다 

   
                                 폭포 waterfall 259x194cm 캔버스에 아크릴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