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이란 자기 행위의 옳고 그름과 선악을 분별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마음속에 존재하면서 바른 삶을 인도해 주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 서양에서 양심(conscience)이라는 말은 원래 “함께(con) 안다(science).”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함께 안다.”는 나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내 마음 속의 또 다른 내가 보고 있고, 모든 것을 함께 알고 있다는 의미이다.

양심의 특징은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며, 다른 사람, 사회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자기 혼자만 옳다고 판단한 것이 항상 양심적인 것은 아니며 다른 사람에게도 사회적으로도 옳은 것이어야 한다,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은 부지런히 갈고 닦아야 한다는 점이다. “사회의 때가 묻는다” 는 말이 보여주듯 건강하던 양심도 거짓된 삶을 반복해서 살다 보면 병들고 기능이 마비되기도 한다. 따라서 일상생활 속에서 작은 거짓도 습관이 되지 않도록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해야 양심을 지킬 수 있다.

양심적으로 행동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이 칭찬해 주지 않더라도 뿌듯함과 보람을 느끼고 비양심적인 행동을 하면 주변에 보는 사람이 없어도 스스로 부끄럽고 마음이 무거워진다. 양심을 지켰다고 항상 상을 받거나 댓가가 주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양심을 지키지 않으면 처음에는 이익을 얻는 것 같지만 결국 더 큰 손해를 입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부패사범으로 처벌을 받는 경우이다. 양심을 어기면서 이익을 얻을 수는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믿음과 존경을 받을 수 없다.

여기 우리는 왜 양심적인 행동을 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한 예가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 탁구 남자 개인전 조결승전에서 한국의 유남규 선수와 스웨덴의 페르슨 선수는 서로 조의 1위를 겨루고 있었다. 세트 스코어 2대의 2의 동점, 마지막 세트에서 17대 16으로 우리나라의 유남규 선수가 1점차로 힘겹게 앞서나가는 상황에서 페르슨의 강한 스매싱 공격이 유남규 선수 측 모서리를 살짝 맞고 밖으로 튕겨 나갔다. 심판은 페르슨에게 점수를 주어 17대 17 동점이 되었다. 그때 페르슨은 손짓으로 경기를 중단시킨 후 심판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공은 탁구대 모서리를 맞은 듯 보였지만, 실은 맞지 않고 나갔습니다. 제가 방금 딴 점수는 무효입니다." 그런 사실이 방송을 타고 알려지자, 관중은 페르슨 선수에게 우레와 같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그의 양심적인 행동에 감동한 것이다. 결국 페르슨은 그 경기에서 패하고 말았지만 관중이 보낸 뜨거운 박수를 비양심적인 승리와 바꾸지는 않았을 것이다.